일상/신앙 묵상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redsiwon 2024. 2. 18. 03:32

토요일 밤 정처없이 인터넷 이곳저곳을 부유하며 돌아다니다가 유튜브 채널 종리스찬에서 성범죄 목회자를 고발하는 이슈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은 안 보고 댓글만 주욱 둘러봤는데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대충 요약해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범죄 폭로 영상에 대한 반응 요약

  1. 총대를 메고 이렇게 폭로해주어서 감사하다.
  2. 그래서 그 성범죄자들 누구냐. 밝혀라. 그들의 목회나 찬양과 멀리하고 싶다.
  3. 우리가 정죄할 자격이 있나.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옳지 않을까.
  4. 비그리스도인들도 볼텐데 이런 활동이 과연 교회에 도움이 되겠나.
  5. 결국 영리 목적이 아닌가.

나는 어떤 부류였는가. 나는 내가 심판자가 되어 ‘저딴 쓰레기들이 있나? 저런 놈들은 목회 못하도록 당연히 퇴출시키고 금지시켜야 되는 거 아니야?’였다. 혹자는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신앙인의 입장에서 이것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왜 그런고 하면, 먼저 위의 3번처럼 성경에서는 우리 각자가 죄인임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뿐 아니라 어떤 댓글에서 인용했듯이 성경에는 범죄한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훈계하고 어떻게 치리를 해야 할지 일러주며 더 나아가 처벌을 경고하는 그런 사도 바울의 서신이 있다. 이렇게 성경 안에서도 같은 주제에 대하여 상이한 반응들이 등장한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여기서 제시하는 키워드는 ‘관점’과 ‘관계’다. 어떤 사건과 그 사건의 연루자들을 평가할 때는 결국 관점이 중요하며, 다양한 관점에 따라 평가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잠깐 딴소리를 하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이런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옳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어떤 관점들이 있는지, 각 관점에 따라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고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한 번 글로 쓰며 생각을 정리해보자.

‘나’의 입장에서 분석한 목회자 성범죄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평가

  1. 심판자
    • 내가 본능적으로 취한 관점이다. 심판자의 관점은 말하자면 응당 어떠해야 한다는 윤리적 관점이다.
    • 윤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포스트 모더니스트에게는 윤리란 인류 보편의 지식이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윤리란 하나님의 뜻이며, 곧 심판자의 관점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그 관점을 자기 것으로 취한다.
    • 따라서 나는 심판자의 관점을 취하여 이 사건을 감히 평가할 수 없다.
    • 너무나도 섣부르게 이 관점을 취하였던 제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한탄스러울 노릇이고, 주님 앞에 몹시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주님의 겸손함을 구합니다. 주님께서 아시다시피 저는 이렇게 악하고 약한 죄인입니다. 언제나 제가 높아질 때 주님 제가 교만한 자신을 깨달아 다시 제가 있을 곳으로, 주님께서 나를 만나주셨던 그 낮은 곳으로 나를 낮추어주소서. 판단하시며 길을 이끄시는 이는 오직 주님이시요, 저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부디 작디 작은 저를 긍휼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소서.
  2. 성범죄 목회자의 스승 혹은 아버지
    • 네 딸이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해보아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할 성도요 목사가, 하나님께는 수치요 피해 당사자에게는 쓰라린 고통이며 혐오가 되었다. 목회직을 내려놓고 평신도로서 평생을 눈물로 회개하며 살아라. 법적, 윤리적 책임도 마땅히 다 감당하라. 처절하게 사과드리고 경제적 보상을 아끼지 말며 법에 따른 처벌을 조용히 감수하라. 목소리를 높여 괜한 혼란과 분쟁을 더하지 마라. 이 사건을 평생 마음에 품고 기억하라.
    • 그러나 용서를 구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기억하라. 이 일로 낙심하지 말고 오직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부디 이 사건의 피해자의 아픔을 잊지 말라.
  3. 성범죄 목회자의 상급자 (같은 교회의 상위 목회자 혹은 교단/단체의 고위 직분자)
    • 스승/아버지의 관점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목회 운영 및 행정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으므로 보다 더 사무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으로 접근한다. 이런 태도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 교회/교단에서는 이 사건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용서를 구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나, 공동체 차원에서는 그 자리에 당신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바라볼 곱지 않은 시선과 그에 따른 실족이 계속 잇따를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회직 면직을 명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죄를 공개적으로 들추어내지는 않겠습니다. 관계된 분들에게 사죄를 표하시고 목회를 정리하십시오. 가능하다면 당신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으로 거취를 옮기는 것을 권면합니다. 그 편이 모두에게, 당신 자신에게도 유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쪼록 반성과 회복이 있기를 빕니다.
  4. 성범죄 목회자의 동료, 선후배, 친구, 아내
    • 스승/아버지의 관점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아내에게는 더 큰 인내와 온유가 요구될 것이다..
  5. 성범죄 목회자의 교회 성도들
    • 나는 완전 배신당했다.. 그분을 그렇게 믿었었는데.. …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사람은 다 죄인이다. 내가 또 시선을 사람에게 빼앗겼구나. 내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나의 눈이 빛을 잃지 않도록,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 목사님께서 그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제가 목사님의 영적 건강과 승리를 위하여 힘내어 중보하지 못하였네요.
    • 주여, 피해받은 자매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마음을 지키소서. 주여, 목사님을 불쌍히 여기시고 온전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주여, 우리 교회를 지키소서. 이번 사건으로 걸려넘어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하신 팔로 붙들어주소서. 교회가 더욱 하나되어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6. 외부 성도들
    • 아이고.. 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구나. 마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처럼, 수많은 죄악이 반복됐던 사사기처럼, 그리고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네들의 인생처럼 죄악은 호시탐탐 우리를 삼키고 있구나. 이 죄악에 삼켜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 아버지 내 마음을 지키소서. 나 또한 저러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죄인입니다. 선 줄로 아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여 소멸시키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감히 심판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이 사건의 당사자들과 해당 교회/단체를 회복시켜 주소서.
  7. 피해 당사자
    • 감히.. 상상할 수가 없어서.. 넘기겠습니다.
  8. 피해 당사자의 매우 가까운 사람
    • 스승/아버지의 관점과 비슷하지만, 보다 더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의 마음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여러 법적, 행정적 조치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러기 위해선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심판자의 관점을 취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하여야 한다.
    • 목사님의 이러저러한 행동으로 인해 S가 지금 이러저러한 상태이며 사과를 받을 힘조차 없습니다. 아직은 아는 이가 얼마 없으니 스스로 목회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사의를 표하십시오. 그리고 부디 하나님과 S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십시오.
  9. 가해 당사자 성범죄 목회자 본인
    •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주님을 만났으면 흰 옷을 입고 발에 묻은 먼지를 씻으며 살았어야 하는데, 죄를 뒤집어 썼구나. 나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뜬 바리새인이요 회칠한 무덤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씀이었구나. 마음이 너무 무섭고 답답하다.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마귀 안에 있었다니..
    • 주님, 돌이켜보니 저는 감히 용서를 구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다만 주여, 제가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오직 한 가지 바라옵기는, S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소서.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습니다. 제발 그 아이를 지켜주소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죽어 마땅한 이 죄인이 받아야 하는데, 그 아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주여, 제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원하고 원하옵나이다..
  10. 번외, 예수님을 바라보기
    • 뜬금없이 웬 예수님인가… 아니 사실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 어떨지, 상상하려 해도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데, 계속 상상하려고 노력해보니 그냥 너무 불쌍하고 슬퍼서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마음이 아려왔다.
    • 글을 쓰면서, 특히 성범죄 목회자 본인의 관점의 글을 쓰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진실로,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은 내가 당해야 마땅한 고통을 아무 죄 없는 다른 사람이 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그렇고, 예수님이 그렇다.. 모든 죄… 피해자가 분명한 모든 죄에는 나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그가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그가 대신 졌다.
    • 사람이 죄를 깨달으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런데 그 용서를 구하고 싶은 욕구가 용서할 피해자의 용서 그릇보다 크면, 기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더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이미 그는 다 용서했거나 혹은 그가 도무지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도무지 용서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용서를 해줄 때까지 눈물의 항아리에 눈물을 흘려 모으며 나의 용서구함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 피해자가 모호하거나, 이미 죽어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도할 수밖에 없다.
    • 피해자가 가해자 그 자신인 모든 죄에 대해서는, 사실은 본능이 가해자이고, 내가 되길 바라는 내가 피해자인데, 본능이 살아날수록 내가 되길 바라는 내가 계속 대신 죽는다. 본능이 죽어야 내가 되길 바라는 내가 살고, 나는 비로소 내가 되길 바라는 내가 되어간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자면 한 순간도 본능이 살지 않고 언제나 내가 되길 바라는 내가 되었던 유일한 인간이며, 그런 점에서 인간의 이상향이다.
  11. 번외, 만약에 스승/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해자 주변에 없는지 도무지 가해자가 반성을 하지 않고 버젓이 활동한다면..
    • 정녕 가해자 주변엔 진실된 스승도 진실된 아버지도 진실된 상급자도 진실된 동료도 진실된 친구도 진실된 아내도 없다는 말인가?
    • 피해자도, 그 사건을 직접 주변에서 겪은 성도들도 걸려넘어짐이 없다면 얼마든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튼튼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정녕 이 세상에 하늘 왕국이 이미 이루어졌단 말인가?
    • 이제는 책임감을 느낀 누군가, 이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느낀 누군가가 나서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이에는 분명히 숱한 저항들이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 가해자 주변에 가득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저항들, 곧 이 모든 거짓 핍박과 박해들은 앞선 선지자들이 모두 받은 것임을 기억하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행복하나니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 그것이 곧 복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정리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 먼저는 감히 심판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사건의 당사자와 관계가 어떠한지 분명히 한다.

훈계할 자는 훈계를, 치리할 자는 치리를, 인내할 자는 인내를, 기도할 자는 기도를, 중보할 자는 중보를, 권면할 자는 권면을, 회개할 자는 회개를, 고난당할 자는 고난당함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하니, 그들은 배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