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어렵다
나는 지나치게 나의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질문하면,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신나게 내 얘기를 한다. 진솔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게 미덕이라는 생각에, 줄줄줄줄 내 얘기를 늘어놓는데, 상대는 예상을 했을까? 당혹스럽지는 않았을까?
조금은 상대방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질문을 받으면, ‘이 질문의 정확한 의도는 뭘까?’, ‘이 질문에 상대방에게 필요한 가장 좋은 답변을 뭘까?’ 같은 생각들.
그리고 관계의 깊이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때로는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내 얘기를 늘어놓는 게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지금 얼마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은 관계인지 등의 여러 변수들이 대화의 적절한 밀도를 결정하도록 돕는다.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지나치게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말자. 개인적인 삶이 아닌 사변적인 대화만 오갈 수도 있다. 이 역시 관계와 상황을 고려하여 조율할 부분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다보면 충만해질 때가 있지만, 그것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자. 나는 이미 충분하다. 나는 예수로 충분하다.
자기 수용
나의 행동, 생각, 감정, 기억은 내가 아니다. 그것들의 주인은 나지만, 그것 각자 자체가 곧 나는 아니다. 즉 이런 것들의 총체가 나를 구성하는 것이지 어떤 하나가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지 못한다.
어떤 부분이 못마땅하거나 잘못됐으면 그 부분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 내 존재를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소치다. 내 자신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처럼 대하자. 행복하자.
시시콜콜한 농담
좀처럼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지 못하고 있다. 그런 친구가 없다. 아쉽다. 때로는 외롭다.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인가?
그래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거 꽤나 좋아하는데. 지나치게 진지해진,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니 사람이 너무 무거워진 감이 있다. 좀 더 가볍게.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