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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리뷰 2 -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redsiwon 2023. 1. 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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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기독교(하드커버) | C. S. 루이스 - 교보문고

순전한 기독교(하드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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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순전한 기독교의 2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요약하고 나의 생각을 덧붙인다. 내용 전개는 전반적으로 저자의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 그리고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식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2부에 들어가면서 1부의 논점이었던 도덕률에 관하여, 그의 논의에 발전에 따라 도덕률이 인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기인한 것임을 전제하고서 논의가 전개됨을 유의해야 한다.


1. 하나님과 경쟁하는 개념들

 

1-1.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모두 틀렸는가?

기독교 이외의 모든 다른 종교의 모든 것들이 틀렸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그들도 진리의 조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

 

1-2. 범신론, 무신론 vs 유일신론 (신에 대한 관점과 그에 따른 선악관)

기독교는 창조주 유일신 하나님 한 분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다.

 

범신론, 무신론이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절대적인 선과 악, 즉 정의와 불의가 없다. 예를 들어 칼을 의사가 쓰느냐 강도가 쓰느냐에 따라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볼 수 있다. 화학물질을 잘쓰면 약이지만 못쓰면 독이 된다는 식이다.

 

따라서 범신론, 무신론은 선악을 논할 수 없다. 세상이 악하다고 말하려면 악에 대비되는 선의 기준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선은 그 말 자체의 의미로 이상향이자 기준이다. 즉 의미 자체로 인격이 나아갈 목적지이자 평가의 척도이다.

 

절대적인 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앞서 1부에서 저자가 말하였듯이 도덕적인 문제에 대하여 싸울 수는 있어도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 벌어질 모든 논의는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제시한 방법이 효율적인지 아닌지가 전부일 것이다. 그밖에 맞다, 틀리다는 논의는 모두 무의미한 감정 낭비에 그칠 것이다.


2. 하나님의 침공

 

2-1. 종교는 단순한가?

종교가 단순하기를 바라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실재하는 것들은 어쨌든지 간에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75p)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본다고 하자. 그것이 빛에 반사되어 내 눈에 이르러 시신경을 거쳐 뇌에서 처리를 거쳐 나에게 인식되기까지 얼마나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간단하게 축약하여 '본다'고 표현할 뿐이다.

 

2-2.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대립하는 두 관점

  • 기독교적 관점: 고장난 세상이지만 세상이 회복될 것을 희망한다. (선의 결여로서의 악)
  • 이원론: 선과 악이라는 독립된 실체의 존재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의 결여, 선의 상실을 악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어둠이 빛의 부재인 것과 같다.

 

악한 것을 악하다는 이유만으로 추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볼 수 없다. 반면에 선한 것은 선하다는 이유만으로 추구할 수 있고 그것을 세상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친절은 선하다는 이유만으로 추구할 수 있다. 반면에 증오는 악하다는 이유만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인간의 잘못된 반응일 뿐이다.

 

선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음의 비유가 참 와닿았다.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상대가 실수였음을 고백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과하면 상대방을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고의로 나를 걸어 넘어뜨리려 하였다면, 설령 그것을 피하였더라도 상대방을 좋게 보기 어렵다. 실제적인 피해는 전자의 경우에 발생하였지만, 우리는 전자의 경우를 선하다고 하고 후자의 경우는 악하다고 한다.

 

선이라는 말 자체가 기준을 나타내므로 사실 이원론은 뿌리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무엇을 선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악이라고 부르는 순간 제 3의 기준이 있음을 전제한다.

 

두 관점의 공통점은 모두 선과 악이 전쟁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이원론에서는 각각의 독립된 권세의 다툼으로 본다면, 기독교에서는 선에 대한 내란이자 반역을 악으로 본다.


이하 추후 정리

3. 충격적인 갈림길

  • 악한 권세의 군림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는가?
    • 자유의지 → 사랑,기쁨,선 / 이것들을 위한 대가
    •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 왜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 “하나님은 왜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을까요? 악을 가능케 하는 것도 자유 의지지만, 사랑이나 선이나 기쁨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 또한 자유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 왜 인간처럼 부패하기 쉬운 재료로 피조물을 만드셨는가?
    •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피조물일수록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더욱더 선할 수도, 더욱더 악할 수도 있다.
  • 어두운 권세는 어떻게 타락했는가?
    • 스스로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고 하나님이 되려고 자처함. 하나님 없는 행복을 추구함.
      • 그러나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을 연료삼고 양식삼도록 만드셨다. 하나님 없는 행복 같은 것은 우리에게 없다.
  •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1. 양심, 즉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주셨음
    2. 좋은 꿈을 주심 — 부활, (영생)
    3. 자신이 어떤 하나님인지 알려주심 — 구약 성경
  •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처한 예수라는 한 남자의 등장
    • 예수는 미치광이이거나 진짜 신이거나 둘 중 하나다. 훌륭한 도덕적 스승이라고 말할 수 없다.

4. 완전한 참회

  •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효력을 갖는지가 아니라, 효력을 갖는다가 주안점이다. 원리를 모르더라도 효력은 누릴 수 있다.
      • 목적
        1.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함
        2.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함
      • 의미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고,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그가 죽음으로 죽음의 권세가 힘을 잃었다.
    • 원리에 대한 한 가지 예시(그림)
      • 우리가 받을 벌, 즉 죄의 값(⇒죽음)을 대신 받으심 → 우리의 빚을 대신 갚아주심
  • 인간이 빠져있는 ‘곤경’이란 무엇인가?
    • (이 곤경은 다른 말로 곧 죄인데)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 독립적인 존재로 서고자 하는 것.
  • 어떻게 이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 기본 전제: 회개 — 전속력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섬.
      •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방향을 돌이켜 새 출발을 시작하는 것.
      • 이 과정은 자신의 그동안 살아오면서 품었던 일련의 생각과 의지를 부정하는 자기 부인이며,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신의 일부분을 죽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어떻게 회개할 수 있는가?
    • 악할수록 회개할 필요는 커지지만 회개할 능력은 작아진다는 딜레마가 있다.
    • 회개와 대속에 대한 그림
      • 설명
        • 하나님께서 도우셔야만 가능하다.
        •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분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이다. 지성, 사랑, 공의, …
        • 회개에 필요한 ‘고난을 감수하고 죽기까지 항복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 본성상 해본 적이 없고 할 필요도 없고 불가능한 일인데,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어서 이것을 몸소 겪으심. 그래서 우리에게 나누어주실 수 있게 됨.
      • 반발과 반박
        • 예수는 신의 아들이니까 이게 쉬웠을텐데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 쉽다고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안전한 사람 뿐이다. 안전한 사람에게 왜 너만 안전하냐고 나무라지 않는 것처럼 예수를 나무랄 수는 없다.

5. 실제적인 결론

  •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의 낮아짐과 고난을 나눌 때 죽음을 정복한 그의 승리 또한 나눌 수 있으며, 죽은 후에 새 생명을 찾아 그 안에서 완전한 피조물이 된다는 것, 완전히 행복한 피조물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106p
  • 새 생명을 얻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특징
      • 우리의 동의 없이 이루어짐
    • 주요한 방법
      1. 세례/침례
      2. 믿음
      3. 성만찬/미사/주의 만찬
      •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위의 방법들은 예수의 권위에 입각하여 받아들이는 지식임
  • 새 생명의 특징
    • 몸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아무 노력없이 유지되지 않음. 얻을 때는 동의 없이, 값 없이 내 능력과 무관하게 얻었지만 이 생명을 돌보고 지키지 않으면 잃을 수 있음.
    •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곧 생명 유지/강화 활동임
  • 새 생명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란?
    • 몸과 몸의 생명이 다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넘어질(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끊임없이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 그리스도인이 선한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나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반응.
  • 물질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이 물질을 만드셨음.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세상을 사랑하심. 하나님은 물질을 사랑하심
    •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전히 영적인 피조물로 만들지 않으시고 물질적 피조물로 만드셨음
    •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들은 단지 도덕적, 정신적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말이 아니라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몸인 우리가 물리적 유기체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임
    • 정신적 차원의 믿음뿐만 아니라, 물리적 차원의 침례나 주의 만찬을 통해서도 생명 전파가 되는 이유가 이것임
  •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를 알아야만 그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 하나님이 이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가 없다.
  • 하나님은 왜 은밀하게 일하시고(그리스도의 몸을 키워가시고) 계신가? 왜 사탄 무리를 적극적으로 정리하지 않으시는가?
    • 자진해서 하나님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원하신다. 오래참고 계신다.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선택의 때다. 마지막 때는 선택의 때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드러나는 때(심판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