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처음 읽고 나서

사색볼펜 2026. 9. 25. 21:25

읽고 나서의 감정

가슴이 먹먹하다. 오이디푸스가 불쌍했다. 예언의 성취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국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런 비참한 현실을 마주했다는 사실이 먼저 안타까웠다.

고통스런 현실 앞에 인간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결국 오이디푸스 자신에게 향하게 되었던 어리석은 저주를 그는 반드시 지켜야만 했을까? 인간은 앞 날을 알 수 없다. 또한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결국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 진실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왜 이렇게 진실은 고통스러울까? 고통은 옳고 그름의 문제, 욕망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저지른 자가 바로 나일때, 저주와 정죄의 화살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며, 나의 욕망이 좌절될 때, 욕망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비참한 자기 자신에 절망한다. 곧 고통이란 결국 자기 혐오와 절망이 아닐까.

 

그러면 사람은 고통스런 진실 앞에서 무력하게 끝을 맞이 해야만 하는가? 그곳이 바로 삶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인 것 같다. 삶을 억지로 끝내지 않는 이상 삶은 계속된다. 그러하다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체적으로 택해야 하는 몫이 사람에게 남아있게 된다.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절망한 채 남아 있을 것인가, 고통스런 진실을 딛고서 일어설 것인가.

 

결코 이길 수 없는 무력함과 공허함의 늪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삶이란, 삶을 넘어서 삶을 주시는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끝없이 무력하고 공허할할 뿐이니까. 나에게 있어 그저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이 무력함과 공허함을 진솔하게 그러안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결국 나의 삶은 이런 순환이다. 언젠가 고요한 순간에 무력함과 공허함을 마주하면 그대로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절망하게 되지만, 거기에서 다시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분의 은혜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일어선다.

기도

세상에 빛이 되시고 빛을 주시는 주님, 제 안에 거하시는 주님 안에서 제가 빛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소망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계속해서 저를 붙들어 주소서. 제 자신을 주님께 맡기나이다. 거룩하신 하느님이여, 거룩하고 전능하신 이여, 거룩하고 영원하신 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