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기독교인이었는데 신앙은 없었습니다.
고등부 땐 교회학생회 임원도 하고 수련회에서 눈물 콧물 쏟으며 기도도 열심히 했었습니다.
대학생 땐 고등부 교사도 했었네요.
지방으로 대학 다니면서 편도로 장장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매주 고향에 올라가 예배드리고 교사 활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저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여러 활동들이 믿음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었고, 관계나 그밖에 다른 이유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지금은 압니다.
신앙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부족했고, 부족한 지식마저 제 개인의 것으로 구체화되지 않았었어요.
2020년 가을에 친구의 권유로 별 생각없이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어요.
매 예배를 무슨 수련회 예배처럼 열광적으로 드리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평일에 담임목사님께서 매일 성경 한 장씩 강해 메시지를 전달해주셨는데, 이를 통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중에서 요한계시록 4장 11절의 말씀으로 제 신앙의 토대가 처음으로 형성됩니다.
피조된 모든 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것이다.
새벽에 혼자 껌껌한 자취방에서 성경을 읽다가 그 말씀구절을 만났는데 거의 20분동안 눈물콧물 쏟으며 꺼이꺼이 울었네요.
삶이 헛헛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사람이 왜 사는지,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들어도 믿어지지 않았었거든요.
이후에 공예배 참석은 물론, 새벽예배도 꾸준히 드리고 생전 해본 적 없는 큰 액수의 헌금도 수차례 드렸습니다.
중간중간 변하지 않는 삶의 모습으로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기도 했었지만,
새로 교회를 다닌지 1년여 만에 예수 없이는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며 두 번째로 신앙의 토대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돼요.
교회에 대한 고민이요.
신앙이 뚜렷해지니까 교회는 뭘까, 무엇이 올바른 교회의 모습인가, 목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 고민하게 돼요.
평신도 주제에 말이죠.
제게는 결국 사랑이 제일이었어요.
공관복음이 요한복음 안에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요약되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은 요한복음에서 요약되는 새계명,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이해되었어요.
곧 아버지께서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아들이 스스로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도 사랑하라.
그러나 교회는 선교와 전도를 강조했어요.
마태복음 24장 14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그제야 끝이 오리라.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의 유언,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사랑하고 있나?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할 내용을, 우리는 과연 잘 살아내고 있는 건가?
우리도 제대로 못 살아내면서 섣불리 전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감히 판단하면 안 되는데 판단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고민을 하게 되면서 제 안에 한 가지 철학적 신념이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다 다르다.
이런 생각이 싹틀 무렵, 우연찮게 ‘주관적 진리’라는 표현을 유튜브에서 접하게 되었어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르케고르에 대한 영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주관적 진리’라는 표현은 살짝 페이크였는데,
진리는 물론 객관적이지만,
그 진리를 개인이 주체적으로 살아내야만 비로소 진리가 참으로 진리이게 된다.
뭐 그런 내용이었어요.
이러나 저러나 이후로 키르케고르에게 관심을 갖고 책도 몇 권 읽었어요.
덕분에 하느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네요.
그리고 이즈음 해서 키르케고르와 관련된 모임에서 만나서 친해진 형님 한 분을 통해 정교회에 대해 알게 돼요.
이후에 한국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성당에도 몇 번 가서 예배도 드립니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의 교리교육도 몇 번 듣고요.
한번은 주임사제이신 안토니오스 신부님께 개인 면담을 요청해서 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내밀한 자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큰 위로와 해방감을 얻게 되었어요.
정교회에서의 예배와 면담을 통해 내심 이곳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자유하고 평안했어요.
왠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 같았어요.
기존 교회에서 고민이 계속된 끝에 결국 키르케고르 신앙을 가르쳐주시는 목사님의 교회로 잠시 옮겨갔어요.
그런데 몇 달 후에 다시 기존 교회로 돌아왔어요.
제 나름은 키르케고르가 가르쳐준 단독자로서의 신앙의 실천이었어요.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나부터 실천하자.
나부터 사랑하자.
그럼 어떻게 할까?
다시 예배를 회복하자.
다시 공동체의 활동을 따라가자.
그런데 참 힘들었어요.
공동체 활동은 이전처럼 강한 동기부여가 없었고,
무엇보다 예배는 설교 때문에 힘들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도 해보고, 금식하며 기도도 해보고, 제 나름의 노력을 해봤지만,
계속 답답하고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키르케고르와 정교회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신학적으로 제 기준이 생겨버렸나봐요.
기존 교회는 구원의 확신을 가르쳤지만, 저는 구원이 과정임을 단단히 믿게 되었어요.
시작은 순간일지언정 그것은 언제까지나 시작일 뿐이고,
삶이 계속되는 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함을..
기존 교회가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는 것은 구원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구원을 확신한 사람이 그 다음에 뭘 할 수 있겠어요.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겠어요.
자신의 구원이 이루어졌으면 다른 이들이 구원받도록 도와야겠죠.
자연스러운 귀결이에요.
이런 생각이 뿌리깊게 박힌 저는 더 이상의 씨름을 관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저의 씨름은 저의 교만인 탓이 크지만, 더 이상 구태여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앉을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더 이상 사람을 보며 힘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싶었어요.
기존 교회에서 우선순위에 대한 설교를 듣고나서 생각이 정리되며 확고해졌어요.
제 삶의 최우선 영순위는 정교회에서 말하는 신화, 곧 하느님과의 연합입니다.
이것이 정교회의 구원에 대한 교리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저는 어쩌면 자연스레 그것을 깨달아 알고 있었어요.
단지 그 신화라는 표현이 생소했을 뿐이지, 요한복음 17장에서 말하는 하나됨, 영원한 생명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존 교회의 담당 목사님께 교회를 옮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겠다고 했어요.
감사드려요 목사님.
그런데요 목사님,
저는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교회를 옮기기기로 확정하기 전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주의 성모 안식 성당에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제분과 면담을 하고 싶었어요.
주임사제이신 일라리온 신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을 보면 여기에서도 실망하기 마련이다.
사람을 보지 말고 진리가 있는지를 봐라.
이리하여 저는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보다 친숙한 서울 성당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보다 가까운 전주 성당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를 옮겼다고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게으르고 음란합니다.
다만 평안합니다.
감사드리고, 기대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치유하실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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