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신앙 묵상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feat. 담임목사님)

사색볼펜 2026. 3. 29. 23:21

우리 담임목사님은 나와 정말 다르다. 죄송하지만 요즘 내 인생의 고난의 3할은 담임목사님과 관계가 있다. 설교를 듣고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아내한테 이야기 꺼내면 조금 정제되지 못한 표현 꼬투리 잡혀서 바로 뚜드려 맞고 혼자 또 삐져서 집안이 전쟁 상태가 된다.

 

시간이 흘러 많이 무뎌지긴 했으나 여전히 해묵은 감정이 남아있다. 왜 이렇게 나는 힘들까. 나는 그 이유가 우리가 서로 너무 많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들어 나는 권위에 대해 경계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더욱 깨닫는다. 권위는 철저히 기능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실제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는 단순한 질서로서의 체제는 빠른 시일내에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성경 말씀과 설교자의 카리스마의 조화에 따른 당위에 속시원함을 느끼나보지만, 나에게 있어 충분한 설명 없는 당위는 마음을 시원케 하기는 커녕 의구심만 키운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자주 간증으로 말씀하시는 첫 회심의 순간에 대하여, 어제 설교 시간에 좀 더 자세히 듣게 되었다. 본인은 PK(=Pastor’s Kids = 목회자 자녀)로서 강단에서 한 목사님이 김장로 일어서, 이권사 커피 타와, 커피 오기 전까지 설교 안 해, 김장로 건축헌금 천만원 해, 이런 권위적인 말씀에, 마음이 조금 열리셨단다. 본인의 아버지 목사님께서도 교회 건축하시고 신천지로 교회가 분열하고 재정적으로 힘들어지는 상황들을 겪으면서, 성도들에게 헌금을 촉구하는 설교를 조심스러워 하셨던 아버지 목사님과 그러한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때라서 그랬다고. 지금 우리 담임목사님이 그런 간증의 주인공 같은 행태를 보이지는 않으시고, 그것의 불합리함에 대해서 부연하시기도 하셨지만, 이러나 저러나 나는 그런 것에 마음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교만하게도 조롱하고 동정했다.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저런 권위는 이해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혐오의 대상인 것 같다.

 

그래도.. 이해해야겠지.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으니까. 우리 어른 세대들은 그런 권위적 집단과 상황에 더욱 익숙하셨을테니. 목사님께서도 무너져가는 권위질서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셨겠지. 그럼에도, 머리로는 알아도, 심정적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님의 도움이 절실하다. 내 힘으로는 이해하고 포용할 수가 없다.

 

나는 왜 그렇게도 권위가 힘들까. 이 역시도 뿌리 깊은 나의 자기 주장과 고집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저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건 나에게는 폭력에 가깝다. 나의 의문은 이것이다. 그 권위질서가 공동체에 어떤 효용과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혹시 반대로 권위자가 스스로의 권위를 낮춤으로써 공동체에 더 큰 유익이 생기고 자연스러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은 아닐지?

 

그렇게 지독히도 불편해서 최소한 존경은 하지 못하겠다면, 존중은 지키자. 존중하지 않는다면 존중받지 못한다. 권위적인 모습 이면에 선한 의도를 찾아보자. 악의적으로 권위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바라는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