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 4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feat. 담임목사님)

우리 담임목사님은 나와 정말 다르다. 죄송하지만 요즘 내 인생의 고난의 3할은 담임목사님과 관계가 있다. 설교를 듣고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아내한테 이야기 꺼내면 조금 정제되지 못한 표현 꼬투리 잡혀서 바로 뚜드려 맞고 혼자 또 삐져서 집안이 전쟁 상태가 된다. 시간이 흘러 많이 무뎌지긴 했으나 여전히 해묵은 감정이 남아있다. 왜 이렇게 나는 힘들까. 나는 그 이유가 우리가 서로 너무 많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들어 나는 권위에 대해 경계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더욱 깨닫는다. 권위는 철저히 기능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실제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는 단순한 질서로서의 체제는 빠른 시일내에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성경 말씀과 설교자의 카리스마의 조화에 따른..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건져주신 은혜’라는 말이 불편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고백하실 때, 입버릇처럼 하시는 고백이다. 물론 당사자께서는 이 고백을 하며 때로는 울먹이시기도 하시는데, 당연히 개인의 감정은 존중 받아 마땅하고 그것을 뭐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내가 이 고백을 들을 때마다 다소 불편한데, 도대체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스스로 글로 정리해보고 싶어서 쓴다. 내가 불편한 지점은 ‘죄인 건져주신 은혜’가 아니고, 죄인을 수식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에 있다. 구체적으로 왜 이 부분이 불편하냐 말하자면 전제가 요구되는데, 나는 이 고백이 ‘구원에 대한 고백’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본다. 들을 때마다 그렇게 느껴진다. 보통 구원이라 함은, 최초로 예수를 믿게 된 사건, 신학적으로는 구원의 서정 중에서 칭의의 은혜를..

지옥이란 스스로 자초한 무덤

지옥, 즉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하고 복음서와 계시록의 상징으로 나타난 지옥, 즉 불구덩이의 모습을 그리며, 그것을 기피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그러나 실제 지옥은,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단절, 곧 스스로 자초한 무덤이 아닌가. 하나님 사랑에서 나오지 않은 모든 행위는 영원히 남지 않고 그저 허무에 사로잡혀 사라질 뿐이다. 이러한 지옥은, 지혜로써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허무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함이라는, 하나님 사랑이라는 가치와 전혀 무관한, 단지 허무라는 부정적 결과만 놓고서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그런 믿음에서 나온 행위는,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것과 때로는 겉으로는 비슷해보여도 본질적으로 천지차이..

키르케고르 딜레마

그리스도인의 앎의 추구는 자기기만에 불과한가키르케고르는 에서 성경 말씀을 대하는 신자의 태도에 대해서, 암호로 쓰여진 연애편지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 편지를 읽는 방식에 대하여 두 가지 방법을 비교하는데, 첫째는 온갖 암호 해독서를 갖고서 먼저 모든 암호를 다 풀려는 것과, 둘째는 특정한 행동을 촉구하는 일부분만이라도 해독이 된다면 그것을 즉시 실행하는 것이다. 두 가지 중 키르케고르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로서 후자의 방식이 바람직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의견에 설득이 되었다. 실제로 기독교적으로 뭘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독교적 삶의 자세는 분명하다. 물론 처음엔 오해가 있지만, 그의 이야기처럼 선을 품고, 언제나 선을 품기 위해 애쓰다보면 조금 빗나간 부분은 자연스레 조정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