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요일에 부트캠프 수료식이 끝났다. 그러고나서 수, 목 이틀 연짱 또 아무 생각없이 유튜브, 만화, 음란물 등에 빠져버렸다. 주일에 프로젝트 후 퍼지지 말고 본질사수하자고 기도제목 올려놨는데, 또 이렇게 저질러버렸다. 종종 뭔가 거창한 듯이 글을 썼는데 아직 나는 이렇다. 사실 얼마 전 긴 산책 후에 글을 썼던 날, 그날의 다음 날도 만화보느라 주일예배를 가지 않았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참 모순적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종종 이 믿음이 진짜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드는 것은, 예수 믿은 후로 실질적으로 바뀐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계속 씨름해야 할 영역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말초쾌락이 이전과 같은 열망과 쾌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후회와 고통도 더 강하다. 그러나 뉴런들에 새겨진 옛 습관의 잔재 때문인지, 할 일이 없거나 사소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기만 하면 이러한 말초쾌락으로 도망치려는 자극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2.
다시 비참해지고 나서 나의 태도를, 특히 관계에 있어서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복음을 받아들였는지'로 사람을 구분지어 보려고 하면, 마치 나는 우월하고 복음을 모르는 자는 반드시 복음을 알아야 할 대상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관계를 가로막는 것 같다.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시기도 하셨다. 어떻게 해야 할까? 관계가 다 박살날 것을 무릅쓰고 다짜고짜 말씀을 전파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나는 의문이 든다. 이 시대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물론 많은 이들이 예수와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 이름의 능력'이 희귀하기 때문이 아닌가.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내 자신 하나 절제하지 못하고 있고 진실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데, 복음을 믿게 함으로써 남을 살리려는 나의 노력이 감히 정당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소 부정적으로 정리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작은 결론을 내려보자.
-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복음으로 거듭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할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이 시대는 껍데기뿐인 그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실제적인 능력을 함께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진실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그 복음의 능력이 내게 살아있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복음을 증거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 다만 내게 허락하신 열매만큼만 나는 전파할 수 있다. 그 이상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진술로서 거짓이요 교만이다. 당장으로서는 삶의 원초적 허무로부터의 자유. 이것이 내가 전할 수 있는 전부다. 누군가 허무함에 힘들어하고 있다면 도와줄 수 있고, 도와주어야 한다.
- 그러할 때 나의 태도는 담대하되 독선적이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므로 복음은 독선적이지만, 나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왜 예수인가>의 비유처럼 세상 모든 사람은 거지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공짜밥을 주는 곳이 어디인 줄 아는 거지일 뿐이다.
- 복음의 능력을 더욱 풍성하고 효과적으로 전하고 싶다면 내가 몸소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자비, 친절, 성실, 온유, 절제의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
위의 묵상은 사실 복음 전파 사명의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지 않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에게서 이탈한 이방인과 다름없으며 나부터 그 생명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나부터, 그리고 회개부터. 주님께서는 우리가 열매를 맺어 당신의 제자가 되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셨듯이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3.
기도는 어렵다. 생각해보면 선한 것들은 다 어렵다. 어려운 게 맞다. 그래서 십자가고 자기부인이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 곳으로.
주님 나를 낮추어 주세요. 나의 가장 낮은 곳, 당신께서 나를 만나주셨던 바로 그곳에 내가 언제나 머물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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