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도 산책

나의 신앙생활의 어려움

사색볼펜 2026. 1. 17. 16:02

어디 인스타나 블로그나 들여다보면 대게 좋은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다들 잘 사나봅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봐주지 않아서, 내가 나에게 물어봅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나의 신앙생활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모태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제대로 신앙한 적은 없어서 멋모르는 때라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이 그려지듯 그저 하자고 하는 대로 했습니다. 주중예배와 금요예배뿐만 아니라 새벽기도도 곧잘 나갔고 평일에 배포되는 성경묵상도 꾸준히 했었습니다. 더불어 교회들에서 소위 ‘사역’이라고 부르는 여러 일들과 행사들에도 꽤나 열심을 다하여 소위 ‘순종’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참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질문들을 정리했고 궁금한 것들이 하나씩 해소가 되어갔습니다. 창조에 대하여, 신학과 과학과의 관계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 기타 등등 특히나 형이상항적이고 초월적인 것들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웬걸, 제 나름대로의 생각과 믿음이 형성되어가니까 신앙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주로 설교 메시지와 제 안에 형성된 생각 혹은 믿음이 충돌해서이지요. 한번 방황을 하고 순종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다시 선뜻 뛰어들이가 어려워졌습니다. 하려면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그게 마냥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이 드는 건, 곰곰히 생각해봤을 때 결국 내가 그것을 진리로 여기지 않기 때문인 것들이 많습니다.

 

구체적 예시를 들어볼까요? 새벽예배, 통성기도, 방언기도,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 때때로 마주하는 다소 부자연스럽고 편협한 성경해석들, 목회자의 성장을 얼마나 외부 강사 섭외를 받는지로 판단하는 것, 설교중 아멘 및 호응 유도, 권위와 역할의 분담을 이유로 성도들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목회자들, 따로 연락하지 않으면 먼저 영혼의 내밀한 안부를 묻고 관심갖지 않는 혹은 그럴 수 없는 목회 현실. 아마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을 예시로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나는 도무지 이런 것들을 진리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교회 공동체를 위하는 방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의 다수가 지금의 교회 현실에서 교회를 위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속한 교회에서는 나름대로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표 목회자가 그것들을 매우, 진심으로, 중시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마냥 부당하기만 한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마저도 이러한 것들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논리는 얼마든 ‘성경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렇기에 저의 어려움은 단순히 이러한 것들이 진리로 여겨지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이런 것들이 해석에 따라 용인되기도 하고 배척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 발맞춰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어려움을 정리해서 말하자면, 육체적 본능을 거슬러야 함은 기본이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이성을 잠시 잠재울 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이성마저 마취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나의 고통을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으며, 알아주려는 이 또한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지금 이도저도 못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것도 아니고 반항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저는 이런 점에서 혼자인 것이 외롭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 군자는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현들은 외로운 가운데 끝까지 홀로 걸어가는 군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아예 혼자였다면.. 군중 속에서 ‘와 이렇게 같은 사람이 없구나’ 하고 느낄 때마다 더더욱 외로와집니다.

 

그래도.. 저는 군자가 되는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군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쉬운 소리는 앞으로 좀 줄여야겠습니다. 그것이 군자의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