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도 산책 14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새벽기도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건지, 모든 말씀이 퉁겨져 나갔다. 직접 말씀을 보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집중해서 설교 말씀을 들어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기도 해보았지만 이 이루말할 수 없는 답답함,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의 어두움은 가시질 않았다. 단 위에서 기도 찬양을 부르면서 계속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는 말씀(롬6:23)이 떠올랐다. ‘아.. 나의 이 어두움은 사망이구나. 죄의 삯인 사망,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 바로 이런 거구나. 이 땅에서 맛보는 지옥의 그림자가 이런 거구나..’ 축도로 설교가 마무리되고 주여 삼창 외치며 기도의 함성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멍했다. 어찌해야 할까, 기도는 해야 할 것 같고,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

금요일, 점심 먹기 전

1. 화요일에 부트캠프 수료식이 끝났다. 그러고나서 수, 목 이틀 연짱 또 아무 생각없이 유튜브, 만화, 음란물 등에 빠져버렸다. 주일에 프로젝트 후 퍼지지 말고 본질사수하자고 기도제목 올려놨는데, 또 이렇게 저질러버렸다. 종종 뭔가 거창한 듯이 글을 썼는데 아직 나는 이렇다. 사실 얼마 전 긴 산책 후에 글을 썼던 날, 그날의 다음 날도 만화보느라 주일예배를 가지 않았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참 모순적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종종 이 믿음이 진짜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드는 것은, 예수 믿은 후로 실질적으로 바뀐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계속 씨름해야 할 영역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말초쾌락이 이전과 같은 열망과 쾌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후회와..

23.10.04(수) 새벽기도 - 동기부여, 사랑하는 법, 진리와 자유, 죄와 싸우기

성탄절 행사에 참여해야 할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서로 사랑, 영적 추억 등으로 동기부여를 하려고 해도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졌는지,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묵상할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직 한 달 여의 시간이 남았으므로 미리 앞서서 씨름할 필요없지 않을까. (어차피 하게 될 것 같은 예감..) 결국 내가 믿고 행하기 나름이라는 생각.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되게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장이라고 불리우는 고전 13장은 보다 더 깊은 차원의 관계를 다루므로 일단 패스. 기본은 황금률(마7:12).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기. 황금률을 깊이 묵상하면, 누군가 친절과 호의와 배려를 베풀 때 그 사람도 그러한 친절과 호의와 배려를 받기를 기대하거나 최소한 받았을 때 실..

23.10.03(화) 새벽기도 - 마음의 중심

‘삶의 자리에서 성실한 것이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예배요 영과 진리의 예배이다. 오늘은 바쁘니까 여리고 기도회 빠져야지.’ ‘내가 잘 되는 것이 곧 교회가 잘 되는 길이다. 내가 잘 되지 않으면 교회도 다 소용없다.’ 다 맞다. 맞는 말인데, 결국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있느냐가 포인트다. ‘이러한 내 생각이 맞다.’가 결론이어서는 결국 교만이다. ‘이러한 생각이 주님의 뜻과 더 가깝다고 믿는다.’가 겸손하고 바람직한 결론이다. ‘내가 중요하다.’는 옳지만 그르다. ‘나보다 주님이, 나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교회가 중요한 것을 알고 동의하면서도 결국 그 교회를 이루는 내가 본질이라는 주장, 즉 나로부터 교회로 향하는..

23.09.23(토) 날 좋은 날 산책 후에 단상

40년 전통의 천복순대국밥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아무런 목적없이 갑천 변을 걷기 시작했다. 날이 좋았다. 햇살도 바람도 온도도 습도도 모두 적당했다. 감사합니다! 1. 생각의 시작은 이렇다. ‘나는 왜 사는가?!’ 이 생각은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날로 새로워진다. 감사하게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크리스천이요, 다른 하나는 이방인이다. 이것을 조금 다른 말로 하면, 하나는 스스로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 왜 사는지 알지 못하고 그 의문을 잊으며 혹은 그 의문을 잊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스스로 왜 사는지를 알게 된 것은 뭔가 대단하고 우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염려에 대하여

염려하다1 :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하다. 걱정: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 애타다: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 고민: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 즉 염려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바라보며 괴로움과 불안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빼앗겨있는 상태 혹은 행위를 말한다. 왜 상태뿐만 아니라 행위이기도 하냐면, 염려는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개역개정) 예수님은 괴로움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다. 다만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로 충분하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

인생 제 3막, 새로운 삶의 시작

나는 최근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19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힘들어지더니 특히 이번 20년 하반기가 유독 힘들었다.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향후 내 2년의 삶이 이 지독히도 싫은 석사 과정-연구에 얽매여있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굉장히 게을러졌다. 게을러졌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갑자기 님 뭔 솔? 어떻게 그게 게으름이랑 연결됨? 그냥 님이 게으른 거지 핑계대지 마삼." 나는 석사 연구가 너무 싫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고 주변에서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군집로봇'이라는 분야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는 현실이 싫었고, 이 '군집로봇' 분야에 대해 지도교수님께서 아무런 전문지식을 갖고 있지 ..

익숙한 순간, 익숙하지 않은 행동

바로 이전 글과 연결된다. 특히 '실행가능한 수준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경우'에 대한 대응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글이다. 내가 한없이 무력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밤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두 경우 모두 겉모습은 다르지만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를 나는 '도망친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숱하게 도망쳐왔다. 이 도피 행위는 행하면 행할수록 강해지고, 허무주의와 결합하여 사람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든다. 내가 폐인이 된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피 행위를 습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위의 두 가지 순간은 '신호'이다. 이러한 신호에 대한 '반응' 행위는 도피다. 주로 유튜브, 음란물, 야식 등이 도피의 ..

삶의 무게

혹자는 다른 이의 고통에 그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삶의 무게를 잴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사람들 저마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같은 저울로 잴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나와 너는 다르니까. 그저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칠 뿐이다. 갑자기 왜 이런 글을 쓰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방금 전에 갑천을 뛰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영하에 접어든 추운 밤에 그것도 자정이 넘어서 왜 뜀박질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살고 싶어서 뛰었다고 말하련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다면, 그냥 한 번 씩ㅡ 웃고 뒤돌아서련다.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테니까.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왜 능동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능동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감정대로, 욕구대로만 살아가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문제인가? 여기서 뻔하게 나가면 '본능대로 욕구만을 추구하는 것은 짐승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만이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름지기 꿈을 꾸고 살아야 한다.'라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관점에서, 나의 삶과 직결해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다. 인간은 여러 가지 욕구를 경험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식욕, 수면욕, 성욕을 포함하여 인간에게 기본적이라고 볼 수 있는 사회적 욕구까지, 이러한 욕구들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다. 나쁜..